동행(백두대간후기)
**백두대간 4구간**
날짜 : 2007년 10월 7일.
날씨 : 맑다가 흐림.
산행구간 : 매요리 - 유치재 - 사치재 - 새맥이재 - 시리봉 - 복성이재
산행거리 : 13 킬로
산행시간 : 약 6시간
오늘도 대장님 포함 총9명 이다.
서울을 벗어난 버스의 차창 밖 하늘은 구름 한점 없는 파란 하늘로 펼쳐져 있다.어제 확인한 날씨로는 태풍의 영향으로 오후에는 '비' 라고 했는데 요즘 기상청 일기 예보가 영~~
너무나 쾌청한 가을날을 보면서 비 때문에 취소되어버린 서울한백산악회의 운동회를 생각하며 아쉬웁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산행 출발전에는 반드시 단체 사진을 찍어둔다,
비록 단원이 8명이긴 해도 선두와 후미가 뚜렷해서 도중에 만나는 일이 절대 없기 때문이다.
(출석사진)
숲으로 들어서자마자 일명 들국화가 우리를 반기고 나선다.
진짜 이름은 '구절초'라 한다.
낮은 구름이 깔려 숲이 어두운데도 구절초 꽃이 어찌나 청아한지 하얀 형광색으로 빛이 난다.
낮은 언덕을 지나보니 다시 도로가 나오고 우리를 내려준 버스가 거기로 차를 돌리러 왔다며
걷고있는 우리를 추월해 쌩!!~ 달아난다.....나 잡아 보란 듯이......"이런~~ ㅋㅋ"
그곳이 유치재 삼거리였고 정식 산행은 여기서 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높지도 않은 산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 선두를 따라 갈려니 벌써부터 숨이 턱까지 찬다,
지난 구간때 이미 난 내 산행실력으로는 도저히 앞서간 저 사람들을 한치도 따라 잡을 수 없다는 걸.......
절대 있을 수 없음을 너무나 절실히 터득 했거늘.... 어쩌자고 이리 숨이 턱이 차도록 저들 뒤를 쫓아 줄달음 치고 있단 말인가......
'에고~~이러면 안되지,.....절대로 남을 의식하지 말고 내 페이스를 찾아 내 스타일의 산행을 고수해야 하느니라...
그렇지 않으면 중간에 지쳐 쓰러질지도 몰라......'
속도를 늦춰서 천천히 오르며 숨을 가다듬었다,
뒤에서 묵묵히 따라와 주시는 여자 대장님
그분은 나만 아니면 날라 가실텐데도 내 스타일에 적응해 주시며,
내가 빠르게 가면 빠른대로 느리게 가면 느린대로 내 뒤에서 묵묵히 함께 움직여 주신다,
무척 고맙고 든든하기는 한데 심적으로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두번 쉴 걸 한번 쉬게 되므로.....ㅎㅎ
산은 낮으나 높으나 산행은 똑 같이 힘들다.
아니...갈수록 더 힘이 든다,
다른 일들은 적응기간이 끝나면 힘이 덜 들어야 논리에 맞는데
산행만은 그런 논리와는 무관한 정 반대 논리인 것 같다,...왜일까?....이젠 그만 적응되어 힘이 덜 들만도 한데.....ㅠㅠㅠ
그렇지만 오늘 구간은 다행히도 거리도 짧고 높은 산도 없다고 한다,
높지 않은 봉우리를 오르락 내리락 거리며 사람들이 넘나드는 '재'를 하나 둘씩 넘는다.
영락없이 동네 뒷산에 산책나온 느낌이다,
대간길마다 토종 밤나무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별로 이름난 산이 아닌 인적없는 대간길이라서 그런지
무르익어 떨어진 토종밤알이 지천이건만 자연 그대로 수확되어 다시 자연으로 흡수될 전망이다.
머물며 통통한 밤알들을 줍고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선두팀이 2시간이나 나 하나를 기다릴 생각을 하니 멈춰서서 주울수가 없어 그냥 지나친다,
그래도 가끔은 멈춰서서 몇개 주워 입으로 직행한다.....ㅎㅎ
걸으며 우물우물....밤맛이 제법 달콤하고 맛깔스러운데 딱 내 입맛인데.....,ㅎㅎ
10시 30분경 사치재(500m),
'대간 길에 88올림픽고속도로가 넘어가는 길목이란다.
명색이 고속도로라지만 요즘 4차선 국도만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나 영호남 소통엔 제법 큰 역할을 하는 것 만은 사실 같았다.
조선시대에 한양 - 삼례 - 남원 - 산청 - 진주 - 통영을 잇는 통영대로의 길목 이었던 여원재의 역할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는 셈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 고속도로를 걸어서 건널 수 없으니 도로 밑으로 뚫려있는 하수로로 들어가 고속도로를 통과....대간을 이어갔다.
620봉 까지 경사도가 40도 이상되는 대간길을 힘겹게 오르며 땀으로 목욕을 한다,
금방 능선에 이를 것 같은데도 올라보면 또 다시 이어지는 경사길...
인내심이 필요한 구간이었다,
8명이 출발 했지만 선두팀 6명은 눈에서 멀어진지 벌써 오래다,
그래도 오늘은 후미에 새로온 사람 포함 대장까지 3명이 있어 한결 위안이 된다.
헉헉거리며 능선에 올랐더니 선두를 따라 갔던 남자분 한분이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가 우리랑 합류를 한다,
선두를 따라 가다가 도저히 아니다 싶어 후미팀 하기로 했다고 하신다...ㅎㅎ
그래서 후미가 4명으로 늘었다,
"앗싸!!~선두 5명 후미 4명 ....'후미 세력 화이팅!!~" ㅎㅎㅎ
높지도 않은 산에서 고사목들을 만난다.
언젠가 불이 났다고 한다,
소나무들이 타다 말았는데 열기에 나무가 죽어 고사목처럼 보인다.
역시 높지 않은 산 능선 군데군데에는 억새가 제법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며칠전 다녀왔던 신불평원만큼은 아니지만 만발한 억새군락지를 보니 카메라 셧터가 바빠지고
앞서간 선두팀들은 아랑곳 없고 기분은 그 무엇도 부러울 것 없는냥 마냥 평안하기만 하다,
12시 30분경,
어느 숲속에 자리잡고 점심시간을 갖는다.
출발때 까지만 해도 화창하던 날씨가 변덕을 부린다,
가랑비인지 안개비인지 분간이 안가는 비가 젖은 땀을 식혀준다,
고도가 775m인걸 보니 시리봉인 것 같은데 고개마루에만 이정표가 있을 뿐
고지엔 어떤 표식도 없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알 수 없기에 그곳에서 일단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복성이 뒷재를 지나니 옛 성터가 나타난다. 이름하여 '아막성', 이라는 글귀가 서 있다,
백제에선 '아막성' 이렇게 지칭했고 신라에선 '모산성' 이라 불렀다는데,
명칭에서 양국 간에 격전이 벌어졌던 살벌한 곳이라고 한다.
지금은 무너져 내려 흔적을 찾기가 애매하고 간혹가다 돌로 쌓은듯한 모양만 산성터인듯한 돌담위에
구절초와 억새만이 무더기로 피어나 그 옛날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13시 30분경 임도 갈림길,억새와 구절초의 군락만 보면 사진을 찍기 위해 뜬구름님을 조른다.
후미에 함께 가시는 분중 한분이신데 사진 찍기를 나만큼이나 좋아 하시는 분 이시다,
그분의 사진 찍는 취미도 도와드리고 나는 덕분에 원하는 사진을 얻을 수 있어 좋고....
사진을 찍다보면 산행 속도가 늦어지기 마련인데 그 부담을 줄일 수 있어 좋다....나는 그냥 편한하게 산행만 했으면 되었으니까....ㅎㅎ
모델료가 우선인지 사진 찍어주신 수고료가 우선인지를 논 하면서 노닥 거리는 것 자체도 이제는 기꺼이 즐거움이다.
구절초가 만발한 재 앞에서 사진을 찍고 간식을 나눠 먹은 뒤 언덕베기 하나를 넘었더니
먼저간 선두팀들이 모두 거기에 머물러 있다.
'복성리재' '성암마을' 이라고 써 있었다.
길 옆에 자리를 잡고 버너에 고기를 굽고...향이 좋은 와인에 독한 꼬냑....
선두팀들이 하산주라며 한잔씩 건네준다.
"잉?....오늘 산행 벌써 다 끝난거야요?."
"네....아쉬우면 저 산 하나 더 넘고 갈까요?."
"야호~~~~오늘 산행 끝이다~~.ㅎㅎㅎ백두대간 별거 아니네요...쉽네요...ㅎㅎㅎ"
보통 6시간 걸린다는 거리를 4시간에 완주한 셈이다,
아마도 산행시간 통계가 잘 못 표기된 것 같으다....느림보 내가 단축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아주 느린보는 아닌가????......하하하~.ㅎㅎㅎ"
많이 기다렸을 선두팀들에게 썰렁한 소리로 미안한 마음을 희석시킨다.
발끝에 채이던 토종밤을 하나 둘 주웠던것이 꽤 된다.
손에 한움큼 움켜쥐고 마지막 사진을 찍으며 백두대간 4회차를 마무리 했다,
올라오는 버스는 막힘이 없었나 보다.
신탄진 휴게소에 한번 들른 기억밖에 없는데
그래도 피곤했던지 넓다란 우등고속버스에 크게 자리잡아 드러 눕다시피 하고
정신없이 한숨 자고났더니 벌써 죽전이란다,
집근처에 도착하니 빗방울이 뚝!뚝!뚝!
6시 10분에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니 남편 눈이 뚱그래진다
"오늘 산에 안갔어?"
"아니?...오늘은 거리가 짧아서 일찍 끝나네?"
"저녁 안먹었지?...씻고 나와서 내가 차려줄께 잠시만 기다리세요."
호뫼